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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운남성 여행 2일차: 비가 데려간 쿤밍의 하루

비가 많이 오던 아침, 든든하게 시작한 둘째 날의 조식.

 
운남성 여행의 둘째 날은 조식으로 천천히 시작됐다. 작은 테이블 위에 토스트와 스크램블 에그, 샐러드와 오렌지가 올라왔고, 아직 잠이 덜 깬 몸에 따뜻한 아침 시간이 먼저 들어왔다. 창밖 날씨는 이미 심상치 않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원래 석림이었지만, 아침을 먹는 동안에도 비는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쿤밍 업랜드 인터내셔널 유스호스텔의 아침 식사는 정말 맛있었다.
잘 구워진 빵과 신선하고 상큼한 과일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석림 대신 향한 쿤밍 옛거리. 우산들이 길의 색이 됐다.

 
운남성 여행의 둘째 날은 원래 석림에 가는 날이었다. 쿤밍까지 왔으니 도시를 벗어나 거대한 돌숲을 보고 오는 일정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정말 많이 왔다. 잠깐 지나가는 비가 아니라, 오늘 하루의 방향을 통째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세차게 내리는 비였다
 

흐린 날이라 목조 건물과 간판의 색이 오히려 더 진하게 보였다.

 
결국 석림은 다음으로 미루고, 쿤밍에서 하루종일 천천히 놀기로 했다. 비 오는 날의 옛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돌바닥은 젖어서 반짝였고, 오래된 건물의 처마 밑으로 사람들이 천천히 걸었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는 소리, 가게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빗물에 번지는 간판들이 한꺼번에 섞였다.
 
 

비를 피해 들어간 책방에서 여행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걷다가 책이 가득한 공간에도 들어갔다. 여행 중에 들르는 책방은 늘 묘한 쉼표 같다. 모르는 언어의 책들이 대부분이어도, 책장 사이를 걷는 감각만으로 잠깐 다른 속도에 들어간다. 석림에 가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 덕분에 쿤밍 옛거리의 작은 장면들을 더 오래 보게 됐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은 계속 젖어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카페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쿤밍 옛거리 안쪽의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밖으로 계속 내리는 비를 봤다.
여행 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생기면 처음엔 조금 아깝게 느껴지는데, 막상 지나고 나면 그런 시간이 제일 오래 남는다.
 

커피 한 잔과 창밖의 비. 석림 대신 받은 쿤밍의 선물 같은 시간.

 
 
창가에 오래 앉아 있으니 쿤밍의 속도가 조금씩 몸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우산을 쓰고 지나가고, 누군가는 가게 앞에서 비를 피하고, 우리는 그 장면들을 안쪽에서 조용히 바라봤다. 여행지에서 좋은 순간은 꼭 멀리 이동해야만 생기는 건 아니었다.
 

비 오는 날엔 쉬는 것도 충분히 좋은 일정이었다.

 
오후에는 안마를 받았다. 종일 비를 맞고 다니면 몸이 생각보다 빨리 무거워진다. 발과 어깨가 풀리니, 아침에 세웠던 계획이 취소된 것까지 같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더 보려고 애쓰는 대신, 그 도시 안에서 몸을 맡겨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젖은 밤공기 속에서 공원의 불빛이 더 진하게 보였다.

 
밤이 되자 비가 그쳤다. 하루종일 젖어 있던 도시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래서 취호 공원으로 향했다. 낮에는 비 때문에 멈춰 있었던 마음이, 밤 산책을 시작하자 다시 여행 모드로 돌아왔다.
 

나무 사이로 이어지던 등불이 밤 산책의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줬다.

 
취호 공원의 밤은 생각보다 화려했다. 문과 처마에는 불빛이 켜져 있었고, 붉은 등불들이 나무 사이에 매달려 있었다. 비가 막 그친 뒤라 바닥은 아직 젖어 있었고, 그 위로 불빛이 길게 비쳤다. 낮의 폭우가 밤에는 이런 장면을 만들어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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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남긴 반사까지 더해져 공원은 더 깊은 색이 됐다.

 
공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분위기는 더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멀어지고, 물가의 불빛과 버드나무, 젖은 산책로가 천천히 이어졌다. 여행의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주 좋은 속도였다.
 

조용하고, 촉촉하고, 조금 영화 같았던 밤길.

 
낮에는 비를 피하느라 실내에 오래 있었고, 밤에는 비가 그친 길을 걸었다.
그래서인지 이날의 쿤밍은 유난히 촉촉한 도시로 기억에 남았다. 돌길도, 나무도, 호수도 모두 빛을 머금은 채 천천히 반짝였다.
 

물가에 비친 불빛까지 보고 나니, 일정이 틀어진 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운남성 여행 2일차는 계획대로라면 석림의 날이었지만, 실제로는 쿤밍을 오래 만난 하루가 됐다.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카페, 느긋하게 먹은 브런치, 안마를 받고 쉬던 오후, 그리고 비가 그친 뒤의 취호 공원 밤 산책.
돌아보면 이날의 핵심은 “어디를 갔다”보다 “어떻게 보냈다”에 가까웠다.
비가 정말 많이 왔고, 덕분에 오래 기억할 쿤밍의 하루가 생겼다.